촛대는 무엇입니까?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7월 17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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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나눔-복음의 춧대 이성일 목사(리빙스톤교회)

촛대는 무엇입니까?

· 성경구절 계 2:1~7 · 설교자 김경진 목사 · 예배일자 2019-10-27

계 2:1~7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촛대는 무엇입니까?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는가?’ 이 질문은 제가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선후배들과 함께 학교 잔디밭에서, 혹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뜨겁게 나누던 주제였습니다. 배차 간격이 꽤 긴 버스를 여러 대 보내면서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친구들과 버스 정류장에서 토론하던 주제입니다. 당시는 그래도 교회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의 질문은 ‘한국 교회, 희망이 있는가?’라는 주제였습니다. 젊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그때 저는 주로 낙관적인 입장을 말하곤 했습니다. 커져만 가는 대형 교회를 바라보면서, 또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다양한 비관적인 문제를 목도하면서, 몇몇 목회자들의 타락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에게, 늘 제가 알고 있는 훌륭한 교회 이야기와 훌륭한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곤 했습니다. 그때 제 아버지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촛대는 무엇입니까? 단골 메뉴였습니다. “아직도 한국 교회에는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이 있어. 그러니 희망이 있지 않은가? 아직도 어떤 교회는 아름답고, 귀하고,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있어. 그러니 희망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제가 유학하며, 또 목회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역시 “한국 교회, 희망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의 변증의 자료가 희박해져 감을 느낍니다. 옛날만 하더라도 여기저기 정말 좋은 목사님이 많이 계셨습니다. 좋은 교회에 대한 소문, 좋은 사례들도 참 많았습니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 그런 목사님들, 그런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갈수록 좋은 이야기, 좋은 소식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희망이 있는 것입니까? 교회의 크고 작은 실수들이 한국 교회에 대한 실망을 형성합니다. 목회자의 욕심과 타락이 기독교에 대한 실망을 만들어 냅니다. 세상 사람들의 오해나 잘못된 정보가 교회에 대한 실망을 만듭니다. 우리 소망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소망교회 때문에 실망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교회를 개혁하는 주체로서 한국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목회자로 저 자신을 규정해 왔습니다. 작은 교회를 세워 10여 년 동안 목회했던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겨 왔습니다. 또 지금은 소망교회라는 큰 교회에서 목회하게 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 소망교회에도 달라져야 할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달라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근심거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의 무관심거리로 전락해 버렸다는 점에서, 신학생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없는 부끄러운 유산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타락한 중세교회를 개혁하고, 새로운 교회를 세워 간 개혁자들의 정신을 기리며, 바른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지,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날입니다. 타락했던 중세교회를 새롭게 하고 태어난 교회가 오늘의 개신교입니다. 바로 이 ‘개혁 교회’인데, 과연 오늘 우리가 정말 순결하고, 아름답고, 깨끗하며,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교회인가를 묻는다면, 우리는 쉽게 “네.”라고 답할 수 없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얼마나 촛대는 무엇입니까? 타락했는지, 구체적으로 열거하거나 나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임을 인정합니다. 그렇게 열거하는 것조차 하나님께 죄스럽습니다.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타락한 모습, 부족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까? 저는 오늘 이 시간에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멋진 교회들과 목사님들을 꼽으면서 그렇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조차 희귀해져 버린 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바라보지만, 이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은 현실을 목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정의로우시며, 순결하시며, 사랑이 많으시며, 우리를 구속하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으며, 그가 하늘에 오르셨을 때 성령을 통해 교회를 세우신 분, 곧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다시 세우시고, 고치시고, 지키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실수하는 인간이 주인이 아닙니다. 실수하는 교회가 촛대는 무엇입니까? 주인이 아닙니다.

교회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루터와 칼뱅과 같은 이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다시 새롭게 하셨습니다. 저는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면서, 루터의 정신이나 칼뱅의 개혁 정신에 대해 먼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여러분과 함께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종교개혁주일의 참다운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 자신의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지켜 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비록 교회들이 계속해서 타락해 가는 것처럼 보이고, 어디에도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한 치의 변함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지키시고, 당신의 성도들을 보전하시리라 믿습니다.

교회는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가 전파된 곳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복음이 들어간 곳마다 교회는 세워졌고, 박해를 받는 곳에서도 견뎌내었으며, 지하로 숨어 들어가고, 카타콤으로 숨어 들어가면서도 교회는 건재했습니다.
교회가 타락한 일들은 많았습니다. 끊임없이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교회들을 다시 세우시고, 또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한계시록 2장입니다. 이 계시록 말씀은 1세기 말엽, 사도 요한이 복음을 증거하다 밧모섬에 갇혔을 때, 일곱 교회를 향해 보낸 편지 형식의 말씀입니다. 요한에게 에베소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내용이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 2장 1절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2:1)
여기서 일곱 별은 무엇이며, 일곱 금 촛대는 무엇입니까? 1장 20절입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계시록 1:20)

우리 주님께서 일곱 별을 붙잡고, 하나님의 사자들을 손에 붙잡고, 하나님의 일꾼들을 붙잡고, 하나님의 교회인 일곱 교회, 즉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며 말씀하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뒤, 지금 하늘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 나라에서도 오늘도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인 일곱 별을 붙잡고, 하나님의 교회인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면서 지금도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지키시며,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지금도 그렇게 일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편 오늘 본문의 흐름을 보면,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에베소, 두아디라, 버가모, 서머나,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총 일곱 교회입니다. 한결같은 패턴으로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이 이어질 때마다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 모든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칭찬의 말씀과 더불어 이어지는 책망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교회에 각각에 맞는 처방의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어 이기는 자에게는 어떤 상을 주실지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에베소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패턴으로 이어집니다. 일곱 교회 이야기의 맨 마지막마다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 3:6)

우리 주님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 곧 일곱 교회 사이를 거니시면서, 즉 소망교회를 비롯한 많은 교회 사이를 거니시면서, 일곱 별을 붙잡고, 주님의 사랑하는 종들을 붙잡고, 성령을 통해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도 있고, 저런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가 다양한 만큼 각자 다양한 문제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한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각각 칭찬받을 만한 내용도 가지고 있습니다. 칭찬받을 만한 아름다운 교회가 있고, 책망받을 만한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여전히 도상에 있습니다. 과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완성체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교회들은 주님의 손 아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으며,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끊임없이 책망하시기도 하고, 교회를 향해 칭찬하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교회를 이끄시며 다스리고 계십니다.
부족하다고 실망할 것도 없고, 잘했다고 자만할 일도 아닙니다. 자만했다면 또다시 쓰러질 것이고, 부족했으나 회개한다면 다시 일어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지도하심을 따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칭찬받는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잘했던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통해 확인해 봅시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촛대는 무엇입니까?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요한계시록 2:2~3)

하나님은 에베소교회가 잘 하고 있던 일들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인내가 있었습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용기도 있었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지만 아닌 자들을 시험해 그들의 촛대는 무엇입니까? 거짓됨을 드러낸 지혜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는 좋은 덕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에베소교회에는 사도 바울이 3년 동안이나 귀하게 목회했던 교회입니다. 디모데가 목회했고, 후에는 사도 요한이 목회를 한 교회입니다. 아주 아름답게 성장해 온 교회였습니다. 귀한 말씀의 사역자들이 거쳐 간 교회였습니다. 열심 있는 교회였습니다. 신학적으로도 바르게 세워지려고 노력했던 교회입니다. 6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요한계시록 2:6)

니골라당의 주장은 이러한 것들이었습니다. “첫째, 복음의 시대이므로 이제 더 이상 율법은 필요 없다. 둘째, 육은 더럽고 영만이 선하다. 그러므로 셋째, 기독교인들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로 보존되므로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니골라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신학적으로 그 내용을 거부했습니다. 그와 같은 주장을 미워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학적으로 바른 교회, 다른 사상을 가진 악한 자들을 걸러낼 수 있는 교회, 나름대로 아름다운 교회, 멋진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성령을 통해 그 교회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요한계시록 2:4)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신학적으로도 건전했습니다. 인내도 있었습니다. 게으르지도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예배드리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좋은 말씀을 듣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성령을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촛대는 무엇입니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교회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권면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2:5)

이렇게 열심히, 나름대로 신학적으로 바르게 세워 가며, 많은 사람이 온전하게, 게으르지 않게,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있는 교회임에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첫사랑을 다시 회복하라. 처음 행위로 돌아가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네 촛대를 옮기겠다.” 교회의 교회 됨을, 교회가 교회 됨을 옮기겠다는 뜻입니다. “그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가 되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는 준엄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오늘 저는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면서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과연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칭찬받은 교회가 몇 교회나 됩니까? 하나님의 책망만 받은 교회는 얼마나 많습니까? 책망과 칭찬을 함께 받은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십시오. 하나도 제대로 된 것 같지 않은 교회들입니다.

그리고 2000년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계에 얼마나 많은 교회가 흩어졌습니까? 얼마나 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까?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고,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다시 새로워지며, 다시 세워졌기에, 교회는 다시 성장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으며, 촛대는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는 이런 다짐을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소망교회, 대형 교회입니다. 대형 교회인 만큼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여러 문제점도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문제들을 풀어보기를 원합니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식들, 때로는 원통하고 억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소리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주시는 성령의 음성으로 듣고자 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장로님들, 도와주십시오. 권사님들, 함께해 주십시오. 우리 성도 여러분,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우리 소망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한국 땅에, 한국 교회에, 정말 희망을 줄 수 있는 교회로 다시 우뚝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문제들도 찾아보고, 해결책도 찾아보겠습니다. 오해가 있다면 소통하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열심히 교회에 나오며,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저의 일이고, 교회의 일이며, 당회의 일이고, 직분자의 일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아름다운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과 함께하는 귀한 시간, 하나님께서 좋은 열매들을 넘치게 채워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일 목사 "제 8의 촛대, 한국교회가 집중해야 할 일은"

중국 지하교회 지도자 수영제 형제(70세) 초청 선교 부흥회가 1월 21일(금)부터 3일간 뉴저지베델교회(정성만 목사)에서 열리고 있다. 집회를 주도한 리빙스톤교회 이성일 목사는 첫날 집회에서 "복음의 촛대"라는 제목으로 비전나눔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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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나눔-복음의 춧대 이성일 목사(리빙스톤교회)

이성일 목사는 "역사속에는 하나님이 한시대의 영적어둠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촛대가 있었다"라며 8개의 촛대를 설명했으며, 한국교회는 1980년부터 제 8의 촛대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예루살렘교회(30-70), 안디옥교회(50-313), 로마교회(313-650), 유럽을 밝힌 영국교회(650-800), 유럽의 동서 로마교회(800-1200), 중세암흑기를 밝힌 수도회들(1200-1500), 영국과 미국교회(1500-1980), 한국교회(1980~).

이성일 목사는 "하나님은 각 시대의 교회들을 촛대를 통해 어둠을 밝히시지만, 사명이 끝나면 촛대를 내려놓게 하시는 분"이라며 한국교회가 중국교회와 동역하여 히말리야를 넘어 예루살렘까지 가기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의 비전나눔의 마지막 핵심이다.

한국교회를 복음의 촛대로 세워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땅끝은 어디인가. 미전도종족은 자기민족을 복음화할 여력이 없는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 2% 미만인 종족이다. 미접촉종족은 교회와 성경이 없는 곳이다. 10/40창은 실제로 그야말로 영적으로 암흑과 같은 곳이다. 우리의 땅끝으로 어디를 말씀하시는가.

믿기는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선교의 문을 열어주셨다. 1991년 고르바초프를 통해 많은 선교사가 러시아에 복음을 전했다. 등소평이 등장하면서 검은 고양이든지 흰 고양이든지 경제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등소평식 중국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많은 선교사가 중국에 들어가고 중국에 복음이 전해졌다. 모택동 치하에서 지하교회 공식적인 교인들의 수는 수십만이라고 했는데 뚜겅을 여니 7천만이 지하에서 핍박과 어려움을 견디면서 중국을 북음화시켰다.

이제는 히말리야를 넘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이 한국교회가 품어야 할 마지막 선교이다. 하나님의 눈길과 관심이 그곳에 머물러 있다. 복음이 히말리야를 넘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길목에 강력한 불교 힌두교 회교도들이 있다. 그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중국교회를 훈련시키시고, 한국교회 여러분들에게 복음의 열정을 심어주셨다. 여기가 좋다고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러 있겠느냐.

87%의 선교사들이 기독교가 잘 셋업된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12%가 미전도종족지역에서, 미접촉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수는 1%도 안된다. 교회헌금도 1%만 미전도 미접촉 종족을 위해 사용된다. 미전도 종족을 위해 한국교회를 8번째 촛대로 세워주셨는데 마지막까지 주님오실때까지 쓰임받기 위해 중국과 동역하여 히말라야를 넘어 예루살렘까지 가기위해 헌신해야 한다.

ⓒ 2011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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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촛대

20210411주일예배_계1:12-18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사도 요한은 일곱 금 촛대를 보았다고 했는데 이 금 촛대는 무엇을 비유합니까? 교회를 비유합니다. 교회를 금 촛대라고 말했습니다. 그 해석을 우리가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1장 20절입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촛대는 무엇입니까?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 했습니다. 교회를 촛대에 비유했습니다.

1) 교회의 중요성 : 주님은 최우선적으로 교회를 보여주시고, 교회에게 편지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의 관심은 교회에 집중되어 있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를 마음에 간직하고 계시록을 상고해야만 합니다.

교회를 촛대로 상징한 것은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한 스가랴 4 :2의 반영입니다. 촛대란 어두움을 밝혀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두움을 밝혀 주는 기관입니다. 어떤 어두움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어두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어두움을 밝혀 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 밝혀 줍니까? 성경을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어두움을 밝혀 줍니다. 성경을 잘 가르쳐서 배우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알도록 해줍니다. 교회는 촛대요 촛불이요 등대입니다. 교회는 세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무엇을 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세력단체가 아닙니다. 세력을 위주로 하자면 교회는 사람을 많이 모아야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큰 세력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많이 모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등불입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는 단체입니다. 적은 수가 모이더라도 신앙으로 분명하게 살고 하나님 말씀으로 바로 살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교회가 됩니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하더라도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하나님을 알게 하는 빛의 운동이 약할 것 같으면 걱정스러운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어두우면 교회다운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는커녕 하나님께 욕 돌리는 일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못 깨닫고 교회와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깨닫도록 하고 잘 살도록 해서 점점 퍼져 나가도록 하고 점점 커지도록 해야 합니다. 오합지중으로 모여서는 집이라도 같이 짓자, 여러 가지 세상에 속한 일도 우리 한번 힘 있게 해보자 하는 것은 교회 운동이 아니에요. 교회는 등대요 촛대입니다. 교회는 힘이나 세력으로 말하면 약합니다. 세력을 위주하지 않기 때문에 핍박을 받습니다. 핍박을 받더라도 남을 핍박하지 않는 것이 교회입니다.

②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13상)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 이 인자(人子)는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말씀하심으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주님이심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금촛대”가 아니라 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이신 것입니다. ㉡ 교회가 금촛대라 칭함을 받을 수가 있는 것도 그 분이 교회 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모세에게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 광경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고”,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출 3:2-4 )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일곱 금촛대 사이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교회가 “떨기나무”라면 신약의 교회는 “금촛대”인 것입니다. 그러나 떨기나무나 금촛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이신 것입니다.

③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13하) 계시는 모습으로 계시하여주십니다. 요한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모습에는 양면성이 있는데 먼저는 대제사장( 출 28 :4의 반영)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나타내심은 계시록에 29회나 등장하는 “어린양”과 관련이 있다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5) 주신 어린양이시며, 어린양을 제물로 드려주신 대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④ 또한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14-16) 모습으로 계시하십니다. ㉠ 이 모습은 한마디로 심판주의 모습이요, 강력한 모습입니다. 뒤에 가서 주님은 “유다 지파의 사자”(5:5)로, “백마와 탄 자”(19:11)로 나타나시는 데, 사탄을 정복하시는 것과 결부해서는 사자(獅子), 또는 백마를 탄 “승리자”의 모습으로, 교회와 관련해서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대제사장으로 계시하십니다. ㉡ 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는 제사장이시며 왕이셨습니다. 주님의 사역에는 이러한 양면성이 있는데, 제자 된 자들을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 말씀함도 같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결부해서는 제사장들이지만, 세상과 결부할 때에는 왕의 권세로 촛대는 무엇입니까? 승리의 삶을 살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양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⑤ “그 오른 손에 일곱 별”(16)을 잡고 계시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말씀하시는데 “사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해지고 있으나, 오른 손에 잡고 계신다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요,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결코 빼앗기지 아니하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때, 좁은 의미로는 교회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으나, 넓은 의미로는 9절에서 말씀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킴이라고 보아야만 안전합니다.

㉡ 이는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는 말씀과 상응합니다. 주님은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 것만이 아닙니다. 그 주님의 오른 손에는 일곱 별, 즉 모든 성도가 그 수중(手中)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게는 피로 값 주고 사신 성도들보다 더 귀중한 존재란 달리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수호 천사라는 해석도 있으나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 히 1:14 )을 받은 존재일 뿐입니다.

⑥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16중)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19:15에서도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하십니다. ㉠ 이 검은 말씀 곧 성령의 검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 검을 어떻게 사용하시느냐? 다시 말하면 “말씀”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 이 점을 19:10에서 빛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代言)의 영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을 통해서 대언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의 검을 오른 손에 붙잡고 계시는 사자들, 즉 충성된 증인(2:13)을 통해서 이(利)한 검(劍)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1장에 등장하는 “두 증인”이 이러한 싸움을 싸우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이와는 상반된 말씀이 13:5절에는 나오는데, 짐승(적그리스도)이 용(사탄)에게 “참람 된 말하는 입을 받았다”는 묘사가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증거하는 “입”을 받았고, 거짓 선지자는 사탄으로부터 거짓말하는 “입”을 받은 셈입니다. 영적 전쟁이란 “말들의 전쟁”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상이 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께서 요한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자기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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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는 무엇입니까?

본문 요한계시록 2:1-7
찬송가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요한계시록은 본서가 증거하듯이 ‘예언의 말씀’(계1:3, 22:19)입니다. ‘예언의 말씀’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1:1)와 환상을 통해 본 종말의 때에 발생할 일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1세기 인물이었던 사도 요한이 당시 언어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는 그 시대 사람들 역시 그 말씀을 이성으로 받아들이기란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물며 2천 년이 지난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 역시 요한계시록을 경험과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한 시도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믿음의 관점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고 지킬 수 있습니다. 1장 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으니, 우리가 지키지 못할 예언의 말씀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1장 19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제 본문은 ‘네가 본 것’에 해당하고, 2장과 3장은 ‘지금 있는 일’에 해당하고, 4장부터 마지막 22장까지는 ‘장차 될 일’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시제가 과거 현재 미래로 정확히 삼등분으로 분리된 것만은 아닙니다. 4장부터 22장에는 과거 내용도 있고 현재 내용도 있습니다.
‘지금 있는 일’에 해당하는 2장과 3장은, 사도 요한이 살았던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편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언서로 분류하지만, 그 안에 서신서가 있는 셈입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는 사도 요한이 살았던 당시 실제 존재했던 교회들입니다. 그 편지가 일차적으로는 일곱 교회에 해당하는 말씀이었지만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만 보내는 편지는 아닙니다. ‘일곱 교회’는 교회 역사에 존재했던 수많은 지역 교회들을 포함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상에 나타날 지역 교회들의 다양한 유형의 표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종말 시대에 성찰해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교회답게 유지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일곱 교회 중 첫째 교회가 있는 에베소는 사도 바울의 2차, 3차 전도 지역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요한계시록 기록 시기보다 약 30년 전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 에베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의 영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에베소는 로마의 행정 구역이었고 소아시아의 수도로서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였기에 복음 전파의 중요한 요충지이기도 했습니다.

‘사자’로 번역한 ‘앙겔로스’는 주로 천사를 뜻하지만,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앞으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들을 살피겠지만 그 내용을 보면 ‘사자’는 특정인을 가리키기보다 교회 공동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 서두에 발신자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입니다. 이분은 예수님입니다. 일곱 별과 일곱 촛대는 1장 20절이 증거하듯이 일곱 교회의 사자와 일곱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살피십니다. ‘붙잡고’는 원문을 보면 현재 분사형으로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주님께서 교회를 주관하시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절과 3절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입니다. 첫째로 ‘행위와 수고와 인내’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칭찬받은 이유는 그들이 수고하며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할 때 수고가 따르지 않습니까? 반대 세력이 있더라도, 인내하며 선을 끝까지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악한 자’는 율법을 무시하거나 부도덕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주님의 칭찬입니다. 그러니까 맹목적인 용납은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사람을 권징해야 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출교시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권징을 통해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위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내용도 둘째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입니다. 사도가 아닌 사람을 사도가 아닌 자임을 조사하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거짓을 드러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잘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교회 내 이단을 포함해서 거짓 유포자 또는 거짓 교사가 있다면, 교회가 그들을 조사하여 밝혀 그들의 거짓을 드러냄으로 교회의 본질을 유지해야 합니다. 넷째는 ‘참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입니다. 첫째 내용처럼 교회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인내하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는 것은 곧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견디며 수고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그만둘 때가 언제입니까? 어떤 상황을 인내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할 때이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그 상황을 잘 참고 견디며 게으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칭찬만을 받지 않았습니다. 책망도 받았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시는데, 처음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처음 사랑이 무엇인지를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이 5절에 나옵니다.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주님께서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시는데 4절의 ‘처음 사랑’이란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 가졌던 마음과 행위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 역시 교회 설립 때 가졌던 처음 사랑이 식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또는 우리 각자 주님을 처음 영접했을 때 그 처음 사랑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는 처음 사랑에 기인한 처음 행위를 다시 행하라는 말씀인데, 처음 사랑에서 벗어나 처음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처음 사랑에 기인한 처음 행위를 왜 지금 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원인분석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에 기인한 처음 행위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서 찾아야 합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해내지 못한다면 머리로만 주님을 믿고 따르는 냉소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회복되지 못하다면 주님께서는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촛대를 옮기신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교회를 역사에서 지워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본질에서 떠나면 그 지역 교회는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과거 수많은 지역 교회들이 지구상에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사라졌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지 않도록 처음 사랑과 행위를 잊지 않고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6절은 5절의 책망과 달리 칭찬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의 새롭게 변화될 잠재력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였는데 주님께서도 이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심으로, 에베소 교회가 주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는 책망을 듣고 낙심하지 말고 힘을 내어 주님의 명령을 따라 행하라는 격려입니다. ‘니골라’는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행위를 허용함으로 교회를 어지럽게 했던 사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여기서 ‘미워하다’는 ‘몹시 싫어하다’, ‘증오하다’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7절 상반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결론에서 반복적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중대한 선언을 하실 때 하시는 관용구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곧 성령님의 말씀임을 알려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 말씀들이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맞게 적용되도록 성령님께서 알려주십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자아가 너무 강하고 자신의 뜻이 강한 사람은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주님께 전적으로 맡길 때 비로소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기는’의 원어는 현재 분사형으로, 이 말씀은 계속해서 이기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약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번만 이기는 성도가 아니라 계속해서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한 번만 공격하고 그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교회를, 우리를 공격하는데 그때마다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길 때 주님께서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십니다. 이 약속의 성취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최후 종말 때 일어납니다. 70인역 성경은 하나님의 낙원이 에덴 동산임을 알려줍니다. 에덴 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 열매는 영생을 주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영역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경외함으로 주님을 믿고 따를 때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다. 오늘 하루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오늘날 교회들에게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00주년기념교회가 귀 있는 자가 되어 촛대는 무엇입니까?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은총이 있기를 원합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게 하시옵고, 처음 사랑이 떨어졌다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믿고 따를 때 수고와 인내를 포기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미워할 것을 미워하고 용납하지 않을 것을 용납하지 않되, 처음 사랑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주님께서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를 거니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에베소 교회의 칭찬은 무엇입니까?
3. 에베소 교회의 책망은 무엇입니까?
4. 에베소 교회의 칭찬과 책망이 나에게 있는지 생각해 보십니다.
5.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위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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